삼국유사의 고장 경북 군위, 필자가 개원한 이곳은 전국에서 평균연령이 제일 높다보니 환자분들 대다수 연세가 많으시다. 예전에는 아이들도 제법 있어서 환자의 연령층이 다양했었는데 술자가 나이 듦에 따라 함께 환자의 연령층도 높아졌겠지만 이제는 소아 청소년 환자가 별로 없다. 출산율도 낮아진데다가 자녀가 있는 경우 가까운 도시로 이사 나가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이리라. 초등학교도 전교생 수가 몇 명 되지 않아 통합운영 되고 폐교 되는 경우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심지어 면소재지에 태어나는 신생아가 한 명도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인지 아기울음 소리 듣는 게 참으로 희귀할 정도다. 이런 지역에 살다보니 유입인구는 적은데 남아있는 단골환자들도 필자와 같이 나이를 먹게 되니 노인환자가 많은 건 당연한 현상이리라. 전국적으로 치과의사 수는 점점 늘고 인구는 줄어드니 개원환경도 예전 같지가 않다. 노인환자가 특히 많은 이곳의 특수성 때문이겠지만 이전에는 필자의 치과가 2층이어도 별 문제를 못 느꼈는데 근자에는 대다수 환자들이 2층에 치료받으러 올라오시기가 힘들다 하신다. 새로 개원한 근처의 치과의원들 모두가 1층이다 보니 경쟁력에도 뒤처질 듯하고 단골 환자분들을
치과의사의 삶에 만족하며 살고 있다고 하면 많은 분들이 의아해 할 것 같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치과의사의 위상도 빠르게 달라지는 게 느껴진다. 십 수 년 전쯤 한창 임플란트 시술이 많아지면서 환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치과의료 서비스가 업그레이드 되어 치과의사의 자부심이 한층 더 고조되었다. 고급시술로 환자와 의사 모두가 만족하는 사회를 꿈꾸지만 의사들끼리의 과잉경쟁으로 인한 부작용도 생기게 되었다. 서로에게 피해가 되면서도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심 때문에 정당한 수가도 받지 못하면서 치과의사끼리의 집안싸움으로 전락해버리는 부끄러운 일도 발생했다. 치과의료 서비스가 박리다매식 영업으로 취급 받아서 될 일인가? 정당한 의료기술료와 지적재산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더욱이 재료비 대비 치료비를 산정하는 언론의 불합리한 잣대에 더해 보험수가보다 낮은 임플란트 치료비 광고와 교묘한 과잉광고나 불법광고로 눈살 찌푸리게 하는 행위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서로를 불신케 하는 슬픈 현실이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게 본인과 후배치과의사들을 위한 일일 텐데도 말이다. 박리다매식 낮은 수가로 진료만 하다가 건강을 해치게 되면 얼마나 어리석은
가까운 거리에 계시는 서제교 원장님과 자주 저녁 식사를 하며 일상을 주고 받고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자주 만날수록 정이 깊어지고 거리가 가까워진다’는 재미난 얘기를 ‘당신과 나 사이’를 인용하며 들려주셨다. 내 아이를 키우고, 교육하며, 평생 뒷바라지하며 젊은 세월 다 보내고 숨 고를 시간이 되니 품 떠난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은 깊어가지만 부모의 마음과 같을 수는 없다. 그 책을 읽고 나서 ‘거리’란 시를 쓰게 되었다. 거리 너와 나의 거리는? 46센티미터 이내였으면 그 보다 더 가까웠으면 입 맞출 수 있는 당신, 그리고 내 아이들 영원히 46센티미터 이내인 줄 믿으며 지금까지 살아온 나 꿈이고 착각이여라 자라서 때가 되면 46센티미터가 넘어 1.2미터가 될 것을 왜 몰랐던가? 마주보는 친구 사이의 거리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서로 배려하는 사이의 거리 그것만으로 감사히 여겨야지 이제야 깨닫는다. 친구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다행스러운가를 더 다가갈 수 있는 가까운 거리 꿈꾸지 말고 1.2 미터 넘는 사이되지 않길 (김 혜남 ‘당신과 나 사이’ 메이븐 2018, 64쪽 참고) 이광렬 시집 ‘고래의 꿈’ 중에서 비록 지금의 빈자리가 외롭고, 공허함을 느끼지